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

경회루 특별관람 해설 2023.4.1 - 10.30 / 국립고궁박물관

by 띵스띵스 2023. 4. 21.
728x90
반응형
SMALL
728x90
반응형
SMALL

치열한 티켓팅을 통해..
경회루 특별관람 예약에 성공했다 ㅋㅋ
4월 1일부터 6개월간 개방하고
매주 화요일과 7월은 휴무


예약

https://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26.asp


경회루 도착!

도착하면 모두 앉아 1층 설명부터 해설을 듣는다.

경회루를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총 3개.
해, 달, 별을 의미
남쪽 해, 왕의 문 제일 가깝게 있고 침소도 있다.
그다음은 관리직, 제일 낮은 문은 음식을 나르거나
광대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기둥은 48개이며
저~ 바깥쪽은 네모 기둥 24개
안쪽은 둥근 모양 24개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서 그렇다고 한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2층으로!
* 틈이 많아 물건이 떨어지면 찾을 수 없다하니 주의!

기둥과 기둥사이 곡선 [낙양]
수평 맞추기 위해 액자처럼
미학적이게 해놓았다고 한다.

철망은 새가 집 못 짓게 조선시대부터 막아 놓았으며
실록에도 적혀있고 [부시]라고 부른다.

이쪽으로 보이는 것은
근정전
사정전 (왕집무실)
왕침실
왕비침실

남쪽 뷰는 북악산
궁이 있는 위치는
백두산에서 흐르는 좋은 정기가 흐르는 제일 남단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 곳이라고 한다.

재밌는 이야기로는
집현전이 경회루 남쪽에 있었는데
담 때문에 못 보는
경치를 보고 싶어서 넘어 들어온 9품 공무원
구종직이 몰래 들어왔다가
세종 만나 경전 춘추 읊고
5품으로 고속승진 했다는 이야기다 ㅋㅋ

동쪽은 담장이 없는데 일제 시대때 없어졌다고 한다.

인왕산이 보이는 동쪽은
연산군 때 인공섬(만세산) 세웠고
배를 띄워 유유자적하게 삶을 살았다.
흥청(기녀들을 부르던 말)을 불러 지내곤 해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하양정(이승만 때 생김)은
낚시하려고 만들었는데
조선시대 유물을 청소하다 발견했다고 한다.
1미터 정도의 용이고
비를 잘 내릴 수 있는 수신으로 넣어둔 것이라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단이 세단이 있고
1단은 (24개 기둥 24 절기) 무의들
2단 내진 (12칸 열두 달을 나타냄) 관련자들
3단 왕
8개의 기둥 (삼재 천지인)
임금을 상징한다.
왕은 항상 남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다고 한다.

해설이 끝나면 자유 시간이 10분 정도 주어지는데 사진을 열심히 찍고 다녔다 ㅎㅎ
왕의 자리에서 기운을 받고 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관람객 아저씨들이 자리를 잡고 누워 버리곤
절대 안 비켜서 황당했다는...

나는 궁에 오면 문양 보는 걸 좋아해서
많이 찍어왔다 ㅎㅎ

넘넘 예쁨

기둥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문을 활짝 열어 위로 걸어놓은 게 신기

계단이 두 개인데 한쪽은 이렇게 막혀있다.

계단 문양도 너무 예쁨..

그리고 수양대군에게 옥세를 넘겨 주던곳이 경회루라고 한다 신하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1층으로 내려와서 한번 더 쫙 찍어보며
마무리!


[고궁박물관]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 조선, 19세기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 바닥을 정리하는 작업 중에 발견했다. [경복궁영건일기]에 경회루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종 어필각석 / 1713

각석은 문자나 그림을 돌에 새긴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왕.
문장가, 명필가의 글과 글씨를 각석으로 만들어 길이 전해지도록 했다. 특히 왕의 글과 글씨는 후대에 전할 본보기로서 귀하게 여겨졌고, 나무 판이나 돌에 모각비치하여 종이에 찍어내거나 탁본하여 보관하기도 하였다. 임금의 글씨를 시킨 어필각석은 시와 편지글, 훈계의 글, 유명한 문구 등 왕실의 문예를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원본을 보존하여 왕의 글과 글씨가 영원히 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영조가 정조에게 하사한 은 도장 / 조선, 1776년

영조(재위 1724~1776)가 83세 때 당시 왕세손이던 정조(재위 1776~1800)의 효심에 감동하여 내린 은으로 만든 도장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영조의 친필로 내린 '효손‘ 과 영조가 글씨 쓴 나이
'팔십삼서'를 인면에 새겼다.

고종황제 어새와 함 /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국새다.
대한제국 주권을 침탈하려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각국에 보낸 친서에 사용했다.

머리 손질 도구 보관함 / 빗치개

봉황꽂이 / 20세기 초

백옥봉황꽂이 / 20세기 초

니사봉황 앞꽃이 / 20세기 초

백옥국화 앞꽃이 / 20세기 초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