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

[학고재 갤러리] 법관 | ZEN2022 03.30-05.01

by 띵스띵스 2022. 4. 13.
728x90
반응형
SMALL

<선禪2022>에 붙여
법관
천 길 물속을
손가락 한번 튕김으로
알수있으랴

보이는 것을 넘고
무의식을 관통하여

그림자 없는 나를 찾아
붓끝이 닳아 없어짐이 얼마이던고

푸른빛을 쫓아
긴 시간 꿈을 깨워

수행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먼 길 떠나네

우측부터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1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12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12cm

우측부터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73x61cm

우측부터
<선2019>,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x91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x91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x91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97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97cm

<선2017>,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x20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72x61cm

우측부터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x130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우측부터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7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7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7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x45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41x32cm

우측부터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x130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97cm

우측부터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12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130cm

가까이 보니 붉은 점도 찍혀 있었다.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90x194cm

<선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32x41cm

법관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한눈에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즉 같음과 다름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변주와도 같은 것이다. 반복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씨줄과 날줄에 의한 교직은 마치 이 세계가 다양한 종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기에는 같으나 서로 다른 차이들을 지닌 수많은 개체들의 상징처럼 보인다.
우주의 사념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 법관은 밤하늘의 별들을 생각하며 수평과 수직의 교점을 반복하는 지고 모를 일이다. 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법관은 수행의 방편으로 그림을 택했고 그림은 이제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인과론적 독재의 논리에서 벗어나 상대론적 관계성에 입각해 정신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것이 법관이 지향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그의 그림에는 무수한 빗금들이 존재한다. 가로와 새로로 겹쳐진 무수한 선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화면 위에 공존한다.
그렇게 해서 기왕에 그려진 선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선들이 자리 잡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들은 다시 화면 바닥으로 가라앉고 다시 새로운 선들이 나타난다. 이 선들의 공존은 융화의 세계를 이루며, 세계는 다시 반복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법과의 그림은 따라서 완성이 아니라 오로지 완성을 지향할 뿐이다."
- [날줄과 씨줄의 교직에서 파상의 반복적 곡선으로]
중 발췌 _ 윤진섭(미술평론가)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