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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건희컬렉션특별전 이중섭 2022.08.12 - 2023.04.23

by 김띵아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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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은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에게 2021년 4월 기증받은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기소장품 10점을 모아 90여 점으로 구성한 전시다. 이는 이건희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두 번째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양질의 한국미술을 소개하고, 대중에게 희소가치가 높은 작품의 관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중섭(1916-1956)은 힘들고 어려웠던 삶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정직한 화공'이자 일제강점기부터 '소'를 그려낸 민족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이후 이중섭에 관한 전시,영화, 연극, 소설 등이 꾸준히 만들어지면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국민화가이기도 하다.
MVI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중섭을 다시 보는 시도로 그간 국립현대미술관이 축적해온 미술품 수집과 연구 기능을 전시로 풀어낸 것이다.
전시에서는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소개한다. 1940년대는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전시하며,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으로 나눠 구성했다. 전시는 재료와 연대를 조합해 예술가 이중섭과 인간 이중섭을 고루 반영하고, 이중섭의 면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 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연구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자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이중섭 전작도록 사업팀의 연구 성과물, 유족의 사진 자료 등도 적극 활용하였다.


엽서화

Postcard Painting
이중섭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문화학원에 입학하고, 1939년 한 해 후배인 야파모토 마사고를 처음 만났다. 그는 후일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1940년부터 1948년까지 다수의 엽서를 보냈는데, 9X140m의 관제엽서 앞면에는 그림을 그리고 뒷면에는 주소를 남겼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엽서화는 총 88점이며, 이를 연도별로 구분하면 1940년에 1조, 1941년이
75점, 1942년 9점, 1943년에 보낸 것이 3점이다. 이 그림들은 1979년 열린 사이증성 작품전 (미도파백화점 화랑, 4.15.-5.15.)에서 처음 소개되었다.일본 유화 시절 김환기, 문학수, 유영국 등과 함께 활동하던 자유 미술가협회의 추상 및 초현실주의 경향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1940, 종이에 먹지그림, 채색, 9 X 14cm
나뭇잎을 따는 여인. 1941, 종이에 펜, 채색, 9X14cm
걷는 사람, 1941, 종이에 편, 채식, 9X 14cm
달과 말을 탄 사람들, 1941 종이에 펜, 크레용, 14 x 9cm

회화 | 새와 닭

Painting Birds and Chickens
이중섭은 1940년 기원 2600년 기념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에 출품한 망월에 새를 등장시킨
이래 1950년대까지 새 또는 닭을 즐겨 그렸다.
1943년 일본에서 돌아와 원산에서 지내는 동안 닭을 직접 기르면서 관찰하고, 그리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이중섭은 두 마리의 닭을 부부로 의인화하거나 새와 인간을 동등한 크기로 두어 가족 구성원으로 엮어내는 한편. 때로는 화면의 대각선으로 닭을 배치해 역동적인 형세로 표현해냈다.

가족과 첫눈,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32 x 49.5cm.
투계, 1955, 종이에 유채, 28.5 x 40.5cm

회화 | 아이들

Painting Children
이중섭이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6년 원산의 한 고아원에서 미술 교사 일을 잠시 했을 때, 그리고 같은 해 그의 첫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은 서로가 몸을 맞대고 있거나 끈을 통해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들 사이에 게와 물고기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1951년 제주도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것이다.

다섯 아이와 끈,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연필, 유채, 33.5 x 51cm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32.8 x 20.3cm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25.8 x 19cm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1950년대 전반, 중이에 채색, 크레용, 19.3 x 26.3cm
꽃과 어린이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7 x 38.5cm
사슴과 두 어린이,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팬, 유채, 12 x 19. 7cm
꽃과 손,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26.3 x 19cm

회화 | 출판미술

Painting Publication Art
이중섭은 작품 활동과 함께 잡지의 표지나 삽화 같은 출판미술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중섭이 참여한 첫 출판 미술은 1946년 원산문학가 동맹 기관지 『용향』의 표지화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고, 1947년 오장환의 두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의 속표지를 설화에 빗대어 그렸다. 1952년에는 구상의 저서 『민주고발』의 표지화 밑그림을 제작하고, 이후 『자유예술』과 '『문학예술』 등에 다수의 삽화를 남겼다. 새 와 꿈에 본 병사는 문중섭 대령의 전투수기
『저격능선』 (1954)의 표지와 관련된 작품이다. <새>는 1957년 9월호 『자유문학』, 의 표지로 쓰였다


은지화

Tinfoil Painting
이중섭이 언제부터 은지화를 그렸는지에 대한 의견은 주변인의 회고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후 시작해 1955년 열린 이중섭 작품전 (미도파백화점 화랑, 1.18.-1.27.)까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섭은 담배를 포장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검정 또는 흑갈색 물감이나 먹물을 솜, 형 파위로 문질러 선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다. 그 결과 은박지 중이의 광력과 음각 선에 문화들어간 짙은 선이 흡사 상감기법을 연상케 한다.

게와 가족, 1950년대 전반 1950s 은지에 새김, 유채, 8x15cm

은종이(단뱃갑)에 송곳으로 선을 북부 그은 위에 암비 색깔을 대충 칠한 뒤
형깊이라도 좋고, 휴지풍치라도 좋아라, 적당하게 종이를 닦아내면 송곳 자국의 선은 암비 색깔이 나고 여백은 광휘로운 금속성 은색 위에 이끼 낀 듯 은은한 세피아조가 아룽지는 중섭형의 그 유명한 담배딱지 그림도 이 무렵에 이룩된 가장 창의적이요. 독보적인 마티에르인 것이다.
- 박고석, '이중섭을 가질 수 있었던 형원!• 「이중섭 작품 집 , 현대 화량, 1 972 년 3월, 107쪽.

물고기와 아이들, 1950년대 전반, 은지에 새김, 유채, 15 x 10cm

회화 | 가족

Painting Family
이중섭은 1950년 12월 피란 생활을 시작하며 어머니와 이별하고, 1952년 6월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 가족은 더욱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별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은 온 가족이 한 데 모여 있는 모습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중섭은 네 사람이 서로 손을 붙잡고 춤을 추는 모습, 배를 타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자신, 원산에 두고 온 어머니 등을 그리며 가족과 재회하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해탄,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13.7 x 21.5cm

편지화

Letter Painting
이중섭은 1952년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이들과 헤어진 이후 1955년 말까지 그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두 아들의 학교 생활, 185년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력 등이 기술되어 있다. 195년 열린 에이중섭 작품전 (대구 미국공보원, 4.11.-4.16.)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몸과 정신 상태로 인해 편지는 점차 줄어들었고, 가족에게서 오는 편지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중섭이 회화와 은지화에서 즐겨 그리던 새와 닭, 물고기와 게, 아이들, 가족을 그리는 화가의 도상은 편지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잉크, 색연필, 26.5 x 21cm
나비와 비둘기, 1950년대 전반, ,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26.5 x 19cm

아주 잘 그렸어요!
또 잘 그려서 보내주세요.
아빠 ㅈㅜㅇㅅㅓㅂ

비둘기와 손,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26.5x 19, 5cm

야스카타군
아빠 ㅈㅜㅇㅅㅓㅂ


회화 | 마지막 풍경

Painting Last Landscape
이중섭은 1954년 진주,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 및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나 대구 개인전 이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대구 등지와
1955년 12월 서울 정릉으로 옮겨와 그린 작품에는 평소 그가 즐기던 소재들이 등장한다. 물고기와 아이들, 새와 손은 두터운 필치와 함께 추상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정릉 집 주변을 그린 풍경화 에서는 나무와 집의 형태가 비교적 또렷하게 보인다. 마지막 풍경에서는 이중섭 작품의 따뜻함과 생의 마지막을 반영한 쓸쓸함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정릉 풍경1956, 종이에 연필, 유채, 크레용, 43.5 x 29.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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